양키스 애런 분 감독, 가문의 영광 수난의 시대..

이 감독직을 맡은 이는 뉴욕 언론이 만들어 내는 부담감을 이겨내야 하고, 거액의 계약을 맺고 머리가 커진 선수들도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며, 매년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우승을 바라는 광적인 팬들의 어마어마한 기대에도 부응해 한다.

또 수십 년 간 양키스 감독은 1973년에 구단을 인수해 2010년 사망하기 전 까지 경영 일선에 자리했던 괴짜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변덕에 시달려야 했다. 현재는 스타인브레너의 아들들이 구단을 경영하고 있는데, 그의 현역 시절에는 특유의 회전문 감독 인사 방식으로 유명했다. 빌리 마틴 전 감독은 다섯 번이나 고용 되고 해고 되기도 했다.

양키스 구원투수 델린 베탄시스는 팀의 새 감독을 두고 "그 가문의 역사가 가장 눈에 띈다고 생각해요. '분'하면 야구계에서 잘 알아주는 이름이니까요. 이번에 감독을 하면서도 그런 부분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독님은 야구를 정말 잘 알아요. 해설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보기도 했고요. 야구계에 오랜 기간 몸 담은 만큼 자신이 뭘 하는 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빅리그에서 선수로서도 성공했고, 은퇴 후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둔 분입니다. 지금은 한 팀을 지휘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라고 덧붙였다.

최근 수년 간 등장한 초짜 감독들과 비교했을 때 애런 분 감독이 대단한 점은, 지난 시즌 후 양키스에 대한 기대치가 하늘로 치솟았지만 그는 당황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양키스의 화려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홈런 중 하나를 날린 선수였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바로 2003년 ALCS 7차전에서 숙적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때려낸 연장 끝내기 홈런 말이다. 또 분은 2009년 3월 개심 수술을 받고 그 해 9월 복귀한 적도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분 감독은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야구 감독을 하며 느끼는 압박감 정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도자 경험이 없는 감독이 그 부담감의 무게에 무너질 상황이 와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베탄시스는 "저는 감독님이 저희 선수단을 정말 잘 관리하고 있다고 봐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신 분이죠"라며 "대부분 선수들이 제법 긴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이런 팀의 감독을 하는 게 물론 수월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떠나 감독님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 계시죠. 그 분이 팀을 이끌고 있어서 다들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적장으로 양키스를 상대하는 쇼월터 감독은 분이 맡은 일이 -- 물론 스타인브레너가 군림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 보기보다 훨씬 어려울 거라 믿는다. 그는 감독 일을 배우면서 동시에 성적까지 내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쇼월터 감독은 "분 스스로도 본인이 좋은 팀을 맡았다고 얘기 할 겁니다. 하지만 이미 잘 다져진 팀을 이끄는 게 그렇지 않은 팀을 맡는 것 만큼 힘들 때가 있지요"라며 "저는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고 했다.

첫 몇 달 간 자신의 성과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분 감독은 프로답게 즉답을 피했다. 양키스는 2017년 지라디 감독 하에 보여줬던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분 감독은 팀의 기대치에 걸맞은 성적을 내고 있다. 레드삭스와 승리를 주고 받으며 포스트시즌을 향한 필연적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분 감독은 "지금 이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양키스 감독 자리가 어떤 의미가 있고 제가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따로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라며 "저는 저희 팀을 사랑합니다. 선수단부터 코칭스태프, 매일 협업하는 프론트 임직원들 까지, 모두와 함께 일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저는 제 일을 사랑하고, 양키스는 훌륭한 구단 입니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라고 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양키스를 이끌었던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벅 쇼월터 감독은 "지금은 좀 수월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쇼월터는 당시 타격 코치 릭 다운스를 경질하라는 스타인브레너의 지시를 듣지 않고 1995년 시즌 후 사임했다.

하지만 1996년부터 지난 겨울 까지 양키스는 감독직에서 만큼은 안정성을 보였다. 조 토리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감독을 맡았고, 조 지라디가 뒤를 이어2008년부터 2017년 까지 덕아웃을 지켰다.

양키스 "조" 감독의 시대는 지난 해 가을 막을 내렸다. 팀이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ALCS)까지 진출하는 놀라운 성적을 냈음에도 구단은 지라디 감독과 재계약 하지 않은 것이다.

몸값이 낮으면서도 기량이 뛰어난 젊은 선수들을 대거 보유한 양키스는 또 한 번 장기 집권할 체제를 갖춘 듯 보이고, 팀은 감독 경험이 전무한 전직 선수에게 이 중요한 열쇠를 맡겼다. 바로 45살의 애런 분이 그 주인공이다.

1997년부터 2009년 까지 6개 메이저리그 팀을 거쳐간 분 감독은 지난 12월 ESPN 중계석에서 양키스 덕아웃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은 해설위원 시절 야구도 모르면서 그저 웃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던 이가 아니다. 그는 야구를 훤히 꿰뚫고 있다.

AL 동부지구에서 양키스와 대결하는 쇼월터 감독은 "저는 양키스가 애런을 데려가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가 양키스 감독 직에 최적임자라고 봅니다"라며 "그는 아버지 덕에 야구 감독 일을 늘 접해왔습니다. 그 보다 더 좋은 혈통과 집안 배경을 갖기도 어렵죠. 분은 방송 일도 해봤고, 뉴욕에서 선수 생활도 해봤습니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분은 놀라지 않을 겁니다. 정말 날카롭고 명민한 야구인이죠"라고 덧붙였다.

분 감독은 야구 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 중 하나의 일원이다. 분 가문은 사상 최초로 3대에 걸쳐 MLB 선수를 배출했다. 애런의 조부 레이 분은 13년 간 선수로 뛰었고 아버지 밥은 19년 간 선수 생활을 한 뒤 6년 간 감독을 맡았다. 애런의 형인 브렛 분은 14년 동안 선수로 활약했다. 4명 모두 1천 개 이상의 안타를 때렸다.